군산 근대미술관, 화려한 미술관보다 먼저 보이는 ‘아픈 역사’
군산 여행을 하다 보면 단순히 오래된 건물을 구경하는 것을 넘어, 우리 근대사의 한 장면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장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직접 둘러보고 특히 인상 깊었던 곳이 구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 지금의 군산근대미술관입니다.https://blog.naver.com/ksg4104/224378168318
사진만 보면 근대 건축물을 활용한 아담한 미술관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오래된 금고와 일제강점기 군산의 모습, 안중근 의사의 생애와 독립운동 관련 전시가 이어지면서 이 건물이 왜 보존되고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됩니다.
군산 한복판에 남아 있는 일본 제18은행
일본 제18은행은 일본 나가사키에 본점을 둔 은행으로, 조선에서는 1890년 인천에 처음 진출했습니다. 군산지점은 1907년 조선 내 일곱 번째 지점으로 설립됐고 현재 건물은 1911년 준공됐습니다. (군산시청)
당시 군산은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이 일본으로 빠져나가던 중요한 항구였습니다. 제18은행 군산지점 역시 단순히 주민들의 돈을 맡아주는 은행이 아니라, 일제의 미곡 반출과 토지 장악 등 식민지 경제 구조와 밀접하게 연결된 금융기관이었습니다. (군산시청)
그래서 이곳을 둘러볼 때는 예쁜 근대건축물이라는 시선만으로 보기에는 부족합니다.
사진 속 전시문에도 “조선은행 군산지점과 함께 일본의 침탈적 자본주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존재”라는 설명이 등장합니다. 당시 군산이 어떤 도시였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외관부터 100여 년 전으로 시간여행
건물 밖에서 바라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크고 높은 창문과 아치형 상부입니다.
지금의 현대식 은행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지요. 밝은 외벽과 회색 창틀, 나무로 된 출입문이 그대로 어우러져 있어 근대 군산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이 건물은 2008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됐고, 보수·복원을 거쳐 2013년부터 근대미술관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군산시청)
현재는 본관·금고동·관리동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본관에서는 미술 기획전이 열리고, 금고동은 안중근 의사 기념전시 공간, 관리동은 건물의 역사와 근대건축 관련 자료를 보여주는 공간으로 활용됩니다. (군산시청)
실제로 남아 있는 거대한 금고
제가 가장 눈여겨본 것은 오래된 대형 금고였습니다.
사진에서 보듯 검은색 금고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습니다. 칠이 벗겨지고 녹이 슨 모습까지 그대로 남아 있어 오히려 당시 분위기가 더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특히 금고문을 열어 놓은 전시 공간 위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이 금고가 채워지기까지 우리 민족은 헐벗고 굶주려야만 했다.”
짧은 한 문장이지만 이곳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 군산 근대미술관의 금고동에는 당시 금고가 재현·전시되어 있으며, 이 문구 역시 전시의 중요한 메시지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그저 ‘100년 된 금고가 신기하다’며 지나치기보다는 그 금고에 들어간 돈이 어디에서 왔을까 생각해 보면 전시가 전혀 다르게 다가옵니다.
안중근 의사의 흔적을 만나는 공간
금고동 안쪽으로 들어가면 분위기가 더욱 숙연해집니다.
벽면에는 태극기와 함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라는 글귀가 있고, 안중근 의사의 체포 당시 모습을 재현한 대형 사진과 자료들이 이어집니다.
안중근 의사의 생애도 연도별로 정리돼 있습니다.
1879년 황해도 해주 출생부터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사건, 그리고 1910년 3월 26일 순국하기까지의 과정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사진으로만 알고 있던 안중근 의사를 이렇게 큰 인물 사진과 당시 자료를 통해 마주하니 느낌이 상당히 다릅니다.
특히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소개한 전시물이 눈에 오래 남았습니다.
아들의 목숨만을 살리기 위해 항소하기보다는 나라를 위해 당당히 죽음을 받아들이라는 어머니의 뜻을 담은 내용입니다. 독립운동가 한 사람만이 아니라 그 뒤에 있었던 가족의 희생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공간이었습니다.
1층과 2층에는 미술 작품도 가득
건물의 이름이 현재는 ‘근대미술관’인 만큼 역사 전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본관으로 들어가면 분위기가 확 달라집니다.
높은 천장 아래 넓은 전시 공간이 펼쳐지고, 오래된 목재 바닥과 하얀 전시벽이 묘하게 잘 어울립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는 서예와 한국화 작품을 중심으로 한 전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사진 속 ‘아름다운 인연 3’ 전시는 송석 진순화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였습니다. 병풍과 족자, 문틀 같은 전통 형식에 한글과 한자, 문인화를 접목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화려한 현대미술관과는 또 다른 맛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100년이 넘은 은행 건물 안에서 서예와 한국화를 감상한다는 점 자체가 꽤 특별했습니다.
2층으로 올라가면 목조 구조와 난간이 그대로 보여 건물 자체도 하나의 전시물처럼 느껴집니다.
지점장실과 건물역사 전시실도 놓치지 마세요
사진에 보이는 작은 문을 따라가면 ‘구 일본 제18은행 건물역사 전시실’과 당시 지점장실로 사용됐던 공간도 볼 수 있습니다.
안에는 제18은행의 역사와 군산지점 설립 배경, 당시 군산의 사진 등이 전시돼 있습니다.
화려한 전시는 아니지만 저는 오히려 이 공간이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왜 일본 은행이 군산에 들어왔을까?’
‘당시 군산은 일본에게 왜 그렇게 중요한 도시였을까?’
앞에서 보았던 금고와 연결해서 생각하면 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군산항과 호남평야의 쌀, 철도와 금융기관이 하나의 시스템처럼 연결돼 있었던 것이지요.
건물 자체도 꼭 천천히 살펴보세요
이곳에서는 작품만 보고 빨리 나오는 것보다 건물 자체를 보는 재미가 상당합니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본관과 부속 건물로 구성되어 있고, 당시 은행 건축 특유의 폐쇄적인 외관과 일부 인조석 장식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금고를 별도의 공간에 설치한 구조도 특징적입니다. (군산시청)
100년 넘게 여러 용도로 사용되면서 내부 일부는 바뀌었지만, 아치창과 일부 부속건물 등에는 옛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군산시청)
사진을 찍는다면 외관의 아치창과 현관, 실내 목재 바닥과 높은 천장 부분을 함께 담아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군산 근대역사 여행 코스에 꼭 넣어볼 만한 곳
이곳 하나만 따로 보기보다는 주변 근대문화유산과 묶어서 걸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바로 인근에 군산근대역사박물관과 군산근대건축관 등이 있어 군산의 근대사를 연결해서 살펴보기 좋습니다. 한국관광공사 역시 근대역사박물관에서 구 군산세관, 구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국관광공사)
추천 동선은
군산근대역사박물관 → 구 군산세관 → 군산근대미술관(구 일본 제18은행) → 군산근대건축관(구 조선은행) → 군산 내항
정도로 잡으면 좋습니다.
서로 가까운 곳에 모여 있어 짧은 시간에도 군산 근대사의 핵심을 비교적 밀도 있게 볼 수 있습니다.
관람 정보
군산근대미술관은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해망로 230에 있습니다. 군산시 관광 안내 기준 관람시간은 3~10월 09:00~18:00, 11~2월 09:00~17:00이며 입장 마감은 각각 17:30, 16:30입니다. 개별 관람료는 성인 기준 500원이며, 군산근대역사박물관에서 주변 시설을 함께 관람할 수 있는 통합권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운영시간과 전시 일정은 방문 전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군산시청)
직접 둘러보니
군산근대미술관은 규모만 놓고 보면 아주 큰 미술관은 아닙니다.
하지만 건물이 가진 역사까지 함께 본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한때 식민지 경제 수탈과 연결됐던 일본 은행 건물이 10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은 안중근 의사를 기억하고 우리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문화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특히 낡은 대형 금고 앞에 서서
“이 금고가 채워지기까지 우리 민족은 헐벗고 굶주려야만 했다”는 문장을 읽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군산 여행에서 예쁜 카페와 맛집도 좋지만,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내어 이런 공간을 천천히 둘러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아픈 역사를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을 남겨두고 기억하는 것.
어쩌면 군산 근대여행의 진짜 의미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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